제48회_대한민국 정치사, 3김 시대!
제48회 [대한민국 국회사를 새로 쓴 ‘3김(金)의 시대’]
한국 정치사 속 세 명의 거물 정치인 ‘3김(金)’
바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그들의 ‘국회의원’ 시절 이야기!
3김이 국회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속속 파헤쳐 본다.
먼저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며 ‘불굴의 인동초’라 불렸던 DJ, ‘김대중’.
박정희의 최대 정적이기도 했던 그는 유신 선포 이후, 일본에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 직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
사건을 두고 국회에서는 열띤 회의가 벌어졌다.
특히 당시 라이벌이었던 ‘한 인물’이 납치사건의 진상 규명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그 인물은 바로 김대중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에 앞장섰던 YS, ‘김영삼’.
그는 전두환 정권 당시, 민주화를 위한 ‘단식투쟁’을 23일간 진행했다.
무엇보다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던 김영삼은
‘젊은 리더’,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기성 정치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JP, ‘김종필’.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던 김종필은
6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의 의장이 된다.
이후 그는 총 9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최다선’ 의원 타이틀을 얻었다.
이들 3김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제13대 대통령 선거’!
1987년 실시된 13대 대선에는 3김과 함께 ‘노태우’가 출마하며 ‘1노 3김’의 대결 구도가 생겨났다.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괴롭히는 문제가 생겨나는데...
과연 3김시대가 낳은 ‘부작용’은 무엇일까?
1월 14일 <우리가 잘 몰랐던 국회史>에서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주역 3김(金)에 대해서 알아본다. 특히 각 인물의 의원 시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한국 정치가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절, ‘3김시대’를 함께 훑어보는 시간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