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_제3공화국의 베트남 파병, 국회의 선택은?
현재까지도 논란으로 남아있는 한국군 베트남 파병.
그러나 당시 파병 결정에 ‘국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도대체 남의 나라 전쟁을 두고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내전으로 시작되었고,
미국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이 전쟁에 끼어든 이유는 바로 ‘통킹만 사건’.
북베트남이 미군 정찰선을 먼저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조작설'까지 불거지는데...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먼저’ 베트남 파병 의지를 내보이며
직접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6·25전쟁을 치른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박정희 정부는 왜 베트남 파병을 자원했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 1964년, 정부는 국회에 첫 ‘베트남 파병 동의안’을 제출한다.
6·25전쟁 참전 우방국이었던 베트남에 보답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파병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과연 첫 번째 파병 당시 국회는 어떤 입장을 내보였을까?
파병 당시 정황과 전쟁의 참상을
당시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던 ‘참전용사’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들어본다.
12월 17일 <우리가 잘 몰랐던 국회史>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의 세계와 국내 정세, 찬반 논의의 열기 속에 뜨거웠던 대한민국 국회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